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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2016년에 읽은 책

유토니움 2016. 12.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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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북플에 기록하면서 책을 읽어봤습니다. 소셜 네트워킹하게 쓰지 않고 '나 이 책 읽었다' 하고 읽은 책을 등록해두는 원시적인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꾸준히 등록했습니다.

그동안 등록한 책들을 보니 이런 식으로 읽었다고 합니다. 읽은 책 중 최근 1년 출간작에 한해서 인상적인 책들을 뽑아봤습니다.


추리/미스터리소설

기억나지 않음, 형사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하루 여정과 6년 전 살인사건이 얽혀가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입니다.

영상처럼 그려지는 묘사도 좋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새로운 사실을 추리해가는 과정도 그럴싸해서 흥미진진합니다. 사소한 단서들도 나중에 의미가 밝혀지는 게 구성이 촘촘합니다. 다만 마지막 전개와 진상은 황당합니다. 뭔가 있을 것 같긴 했지만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재밌었습니다. 생생한 묘사나 몰입감이 너무나도 탁월해서 그대로 빨려들어갑니다. 후반이 작위적이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어서 단숨에 해치워버렸습니다. 롤러코스터에 오른 것처럼, 그렇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이고 그 정도로 재밌습니다. 추천합니다.


왕과 서커스

네팔에 갔다가 우연히 큰 사건을 만난 기자와 의문의 사체가 나오는 추리소설입니다.

작가는 기자 다치아라이가 네팔의 숙소에 들어가는 것에서 귀국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다치아라이가 네팔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변화를 겪느냐, 이걸 작품 전체의 중심축으로 잡은 것입니다. 여기에 미스터리가 조연 정도로 딸려있습니다.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 중심이며 곧 결말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 쓰입니다. 야심찬 구성입니다. 낯선 네팔의 거리를 묘사하는가 하면, 뉴스 보도와 기자의 역할로 주인공을 흔듭니다. 추리소설답게 추리도 하더니, 마지막에 반전까지 있었습니다. 욕심 많은 작가가 성공한 것 같습니다. 어느새 고뇌하는 주인공 다치아라이에 빠져서 모든 과정을 다 즐기고 말았습니다.


일본소설

사라바


영미소설

크로스토크

코니 윌리스 신작 장편소설이 한국과 미국에 동시출간되었습니다. 재밌겠지 싶어서 샀습니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재밌어서 놀랐습니다.

당연히 조용조용한 책이 아니라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책입니다. 책이 막 시끄럽습니다. 문장들이 폭풍우처럼 날뛰는 게 유쾌합니다.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텔레파시 소동, 새로운 스마트폰 아이디어, 가족들 이야기까지 척척 맞아떨어져서 자리를 찾아갑니다. 뭔가에 홀렸다가 깨어나니 신기하게도 끝나 있어, '아 코니 윌리스가 지나갔구나' 했습니다.

내년도 기대합니다. 아작 출판사.


에세이

모든 요일의 여행

모든 요일의 기록을 잘 본 기억이 있는데 신간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도 훌륭한 에세이였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여행 에세이입니다. 하지만 여행일지를 쓴 것은 아닙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여행가가 되었는가 하는 에세이입니다. 이 여행가, 곧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 사람의 시각으로 본 세상은 어떠한가 하는 걸 볼 수 있는 글입니다. 좋은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내 손으로, 교토 + 오사카

이다불패


사회과학

배드 걸 굿 걸


만화

던전밥

던전 탐사를 소재로 하는 판타지 만화입니다. 멸망한 고대왕국, 고대의 마술사, 미지의 던전, 그리고 그 던전을 탐험하는 모험가들... 오래 전 RPG를 떠올리게 합니다. 옛날 RPG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더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을 만화입니다.

기본적인 배경에서 옛날 게임 냄새가 나지만 게임과는 전혀 다른 부분을 그립니다. 던전 이야기면서 생활감이 넘치는 게 큰 특징입니다. 게임이라면 마물은 무작위로 나타나는 방해물, 위협 요소일 뿐이며, 모험가에게 중요한 것은 전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던전밥에서 마물은 생물입니다. 마법으로 구성된 환경에도 먹이사슬이 있고 생태계가 있습니다. 모험가들도 게임 아바타같은 게 아닙니다. 파티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돈을 주고 모험가를 고용해야 하며 그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물자보급도 중요합니다. 특히 밥입니다. 식자재를 구하고 요리하는 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던전밥입니다.

밥의 중요성은 도입부에서도 나타납니다. 주인공 라이오스 일행은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다 드래곤을 만나 전멸합니다. 지상으로 탈출은 했지만 라이오스의 여동생 파린은 던전에 남겨졌습니다. 돈도, 물건도 떨어지고, 일부 파티원들도 퇴직해버립니다. 시간도 물자도 제한된 가운데 여동생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던전 속 생태계에서 식량을 조달하며 모험해간다는 것이 던전밥의 배경 스토리입니다.

던전이 무대지만 게임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한 만화입니다. 열쇠사 칠책같은 존재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투능력이 없습니다. 함정과 자물쇠가 전문 분야입니다. 구닥다리 게임에나 나올 것 같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주로 변해왔기 때문에 이런 건 아예 생략되어버렸습니다. 어디 갈 때마다 함정을 확인하고 해제해야 하다니 게이머들은 귀찮아서 하기 싫을 것입니다. 그리고 RPG도 액션과 결합하는 게 기본이 되었는데, 그게 아니라도 전투는 필수인데, 전투능력이 없는 캐릭터는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화는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는만큼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창작세계입니다. 이런 데서 게임과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건 독자가 아닌 작가의 편의를 위하는 게 됩니다. 직접 하는 게임에서는 귀찮지만 독자들은 칠책과 같은 캐릭터를 통해 더 깊고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던전밥은 게임의 규칙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버려지는 부분을 만화가의 상상력으로 보여줍니다. 그만큼 만화가가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나온 만화인 것 같습니다. 던전이라는 신비한 공간과 마물과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놀라울정도로 천연덕스럽습니다. 게임 속에서 보던 마법세계가 살아 숨쉬는 걸 보는 것 같습니다. 풍부한 상상에 세심한 창작까지 다 갖췄습니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제목만큼이나 시적입니다. 글이나 그림 너머의 것들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정제된 연출로 감정을 불러내는 무서운 작품입니다.


다가시카시


책속에서

화가 난 우리는 써니를 호되게 야단칩니다. 실용, 이익은커녕 쓴맛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밑창이 벗겨지는 그 순간의 쾌감을 맛보고 싶어서 다시 새 신발에 손을 댑니다. 이것이야말로 취미입니다.

조금이라도 실생활에 보탬이 되는 취미를 가지려고 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나가 죽어라.

토한다든가 똥을 누는 것은 인간이라서 도저히 취미로 삼을 수 없지만 남에게 "어,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그거 어디에 쓸모는 있냐?" 그런 말을 듣는 지극히 당연한 취미를 갖고 싶다고, 오늘도 쓰레기를 사랑하고 다다미를 발톱으로 할퀴고 빗자루에 싸움을 걸고 레코드 진열장에 토를 하는 네 마리의 공주님을 보며 간절히 바라 봅니다.

- 이 얘기 계속해도 될까요?


- 어른이 되기는 글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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